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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라이프/독일라이프

비오는 함부르크, 알스터 호수를 거닐다

by moin 2017.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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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평화로운 알스터 호수 산책 



원래는 비 오는 날에는 집에 콕 들어박혀 있습니다. 물에 젖은 걸 말리는 일도 귀찮고, 추위에 약한 체질이라 특별히 나갈 일이 없으면 따뜻한 방 안이나 카페 안에서 비오는 창 밖을 바라보거나 하는 일이 비 오는 날 제가 하는 일의 전부 입니다. 


하지만 이 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3월 19일 함부르크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그 전 까지는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도 맑았다, 흐렸다, 비가 왔다를 반복하며 햇님과 구름이 싸우는 듯 하더니 결국 구름이 이긴 듯 온종일 비가 내렸지요. 처음에는 빗 속을 걸어다니니 추워서 얼른 숙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숙소를 옮겨야 해서 캐리어를 낑낑대며 끌고 빗 속을 다시 걸어야 했지요. 제 몸무게 만한 캐리어를 옮기고 나니 춥기는 커녕 몸에 열이 나기에 집안에 있는 것이 갑갑하여 새로 옮긴 숙소 주변을 둘러보고자 길을 나섰습니다.


걷다보니 비와 안개에 휩싸인 알스터 호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걸어서 10분 정도, 이 숙소 위치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스터 호수는 함부르크의 중심에 위치한 커다란 호수 입니다. 독일 여행으로 오신 분들은 Junfernstieg 역에 내리면 호수와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알스터 호수는 크게 북쪽의 더 큰 호수인 Außenalster(Outer Alster)와 시내 중심부에 더 가까운 안쪽에 위치한 호수인 Binnenalster (Inner Alster)로 나뉘어 있는데 호수가 워낙 커서 보이는 각도 마다 풍경이 달라 거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돌아본 곳은 Außenalster의 오른쪽 둘레의 중간쯤이었습니다. (지도 이미지의 꽃 모양으로 표시)


이쪽으로 둘러보시려면 Lohmühlenstraße역이나 Lübeckerstraße 역에서 하차한 후 지도를 참고하여 호수 방향으로 쭉 직진해서 10분 정도 걸으시면 됩니다. Junfernstieg에서 나와 Binnenalster부터 따라서 걸어올라와도 되지만 좀 더 거리가 있어요. :) 아마 관광오시는 분들은 Binnenalster를 주로 보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저도 그랬었지만) 그것이 절대 알스터 호수의 전부가 아니랍니다.





이전에도 이 지점에 왔었는데, 그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Junfernstieg 방향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처음으로 만난 '푸른 잔디, 노란 갈대, 물안개에 잠긴 알스터 호수'가 어우러진 모습에 흩날리는 빗속에서도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이제 함부르크에도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독일 남쪽은 벌써 꽃이 핀다고들 하구요.







고요한 호수의 풍경입니다.


저는 호수에 떠다니는 새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호수만 바라보는 것도 즐겁긴 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오리나 다른 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꽤 재미가 있어요.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든 늘 호수의 풍경 속에 함께 해주는 오리들에게 작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걸어가니 꽤 널찍한 광장이 나왔습니다. 광장과 호수의 경계에 세워진 울타리에는 나란히 사랑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것마저도 독일인의 국민성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정갈하게 채워져 있어서 인상적이었어요. 자물쇠의 수가 많지 않은 것이 조금 의아하기도 했구요. (나중에 친구한테 물어봐야 겠네요)







조금 떨어진 곳에 동상 같은 것이 세워져 있고, 사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오리나 다른 물새들이 꽤 말이 모여있었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이 녀석들은 딱 봐도 오리는 아닌데요. 제가 '가오나시'라고 부르고 있는 녀석들이에요.







늘 한 마리씩 마주쳤었는데 이렇게 떼를 지어서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어요. 







바로 옆에 펼쳐진 잔디밭 공원은 오리들이 열심히 식사 중이었어요.
때마침 함부르크 시티 투어 버스가 지나가길래 서둘러 한 장 찍었네요.







등에 밴 백팩은 젖어가고, 우산은 제 몸만 가릴 정도로 작아서 이미 온 몸이 다 젖고 있었지만, 계속 걸어보기로 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관광을 온 듯 사진을 몇 장 찍다 사라지고, 조그만 아이를 데리고 산책나온 단란한 가족이 눈에 띕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사람들은 이 빗속에서도 비를 맞으며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렇게 이야기 해도 맑은 날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이 정도가 저에게는 딱 적당하달까요.







호숫가 바로 옆 잔디밭에는 다양한 새들이 섞여 있었어요.
오리, 갈매기, 까마귀, 가오나시 무리 :)








함부르크에는 엄청난 위엄을 자랑하는 커다란 나무들이 참 많아요. 저는 또 그런 나무들이 너무 너무 좋구요.









아까 제가 이 새들을 '가오나시'라고 부른다고 말씀드렸는데, 정면 사진을 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가실거에요. 처음 만나자마자 '오!!!! 가오나시!!!' 를 외칠 수 밖에 없는 인상적인 외모의 새였어요. 아래 사진을 보시면 공감하실거에요. 아직도 이름은 모르지만 이름을 알아도 가오나시라고 부를 것 같네요. 겉 모습은 일반 새처럼 생겼는데, 역시 물새인건지 다리에 물갈퀴가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 특이한 건 오리처럼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가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발가락 마다 넓적한 물갈퀴가 세개씩 날개처럼 붙어 있었어요. 








제가 계속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갑자기 한 녀석이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가왔어요.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우루루 몰려들더군요. 진짜 저 위의 사진에 있는 녀석들이 다 저를 향해 걸어왔어요. 😂
너무 놀라기도 하고 재밌어서 미처 영상에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특이한 경험!



아마도 사람들이 종종 먹이를 주나 봅니다. 아쉽게도 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요...
생각보다 사람을 겁내지 않고, 호기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호숫가 가까이서 발견한 특이한 나무 그루터기가 있어서 찰칵. 
모든 나무 그루터기가 이런 것이 아니라 더 신기했어요. 절반이 넘게 쇠로 덮혀 있고, 그 옆에는 이름도 박혀 있었거든요.
무슨 사연이 있는 나무인걸까요?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다보니 어느 새 여기까지 :)
두어시간 가량을 걸어다니다 흠뻑 젖고 돌아왔지만, 앞으로 비가 와도 꼭 알스터 호수는 걷겠다고 결심할 만큼 너무나도 평화롭고 고즈넉한 시간이었어요. 여행가서 비가 오면 늘 움츠려 있기 바빴는데, 그 풍경 속으로 뛰어들어 보는 것도 너무 좋구나 라는 경험을 했던 하루.
돌아오자마자 감기에 걸리지 않게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일찍 잠에 들었습니다.



함부르크에 오신다면 알스터 호수는 꼭꼭 둘러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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