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라이프/독일라이프

독일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코로나 휴지 대란'의 이유

노이웨이 2020. 3. 23. 05:05
반응형

이 글은 watson.de의 독일 정신과 의사 Michael Huppertz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하여 제 개인적인 견해를 섞어 재구성한 글입니다.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 지금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 곳곳의 마트에서는 휴지가 그야말로 동이 나고 있다.
(아마 휴지 회사들은 뒤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겠지?)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다소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엔 기사를 읽고 있는 내 눈을 의심했다. 휴지를? 대체 왜?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한국인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했을 정도로 이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다. 일본에서 퍼진 어떤 잘못된 '카더라'설 때문이라는 '카더라'도 있지만, 독일 심리학자들은 '이런 행동을 통해서라도 내가 이 위기에 무언가 대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한 행동이라는 분석과 '불안을 느끼지 않던 사람들도 소셜 미디어로 보이는 영화같은 사재기 장면들을 보고 불안이 전염되어 따라하는 것'이라는 분석 등을 내놓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미래는 불안하다

 

선진국이라도 미래는 불안하다.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도 될 것이다. 그래서 실상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 현재를 컨트롤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은 코로나가 발생하기 오래전부터 늘 습관처럼 내가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정보를 얻고 분석하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데 집중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게 터져버렸다. 

 

 

 

정부만 믿고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고 투자하며 나와 내 가족을 지켜오고 있었지만, 갑자기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가 생겼다. 바로 코로나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개인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먹구름처럼 유럽까지 덮쳐왔다. 정부가 계속 괜찮다고 했지만, 정부의 말과는 다르게 확진자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사람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리먼 브라더스, 적금의 이자, 은퇴 등 예전에는 '당연히 안정적 이리라 확신'했던 것들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봤던 세대들은 불안해졌다. '정부가 전혀 경계하지 않고, 의심 없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들은 의심해봐야 한다'는 경험이 축적되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손을 열심히 씻고 있지만,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가? 태풍처럼 눈에 보이는 재해와는 다르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었던 기존의 자연재해와는 다르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불안을 더 극대화시켰다. 사람들은 마트로 눈을 돌렸다. 

 

 

Photo by  Jasmin Sessler  on  Unsplash

 

휴지로 위로를 받는다?

 

정부를 100%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코라나라는 위기가 왔다. 정부의 지침대로 손을 열심히 씻고 있지만 그것만 따라서는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는다. 소독제는 진작에 품절이 되었다. 마스크도 구하기 어렵게 된지 오래다. (신기하게 길거리에 쓰고 다니는 사람은 없지만)

비유하자면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마스크를 사서 쟁여두느라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것처럼, 서양국가에서는 '휴지'가 그런 아이템이 되었다. 마스크는 이미 품절이거나 있어도 너무 비싸다. (독일 기준, 장당 최소 만원에서 보통 2만~2만 5천 원까지도 간다. 1장 가격) 그리고 어차피 이 곳은 마스크를 쓰는 '분위기'가 아니다. 소독제 같은 위생용품도 진작 품절이 되어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인가라도 더 해야만 했다. 음식은 필요는 하지만 너무 많이 사둬봤자, 유통기한 안에 다 먹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갈 확률이 있다. 그렇게 돈을 '버릴' 만큼 바보는 아니다. 그렇다면 '저렴하고, 쟁여둘 수 있지만 상하지 않고, 언젠가는 다 쓰게 되있는 것, 그리고 코로나와는 관계없지만 어쨌든 위생과 관련된 아이템'... - 그렇게 휴지가 이들의 타깃(?)이 되었다.

 

 

사재기도 전염이 된다?

 

그렇게 '자기 통제감'과 '안정감'을 얻기 위해 시작된 일부 사람들의 사재기가 '재난 영화처럼 텅 빈 선반'이라는 아주 좋은 자극적인 소재가 되었고, 요즘처럼 인터넷과 플랫폼이 잘 발달한 시대에 물 만난 고기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것은 '괜찮던 사람들에게도 사재기를 전염'시켰다. 1차 감염은 SNS를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텅 빈 선반' 사진들이었다. 유사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2차 감염이 있었다. 처음에는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사람들이 사재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도 2차 감염이 있다. 바로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에게 위기가 올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또 다른 사람들이 사재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실제로 이것을 경험했다. 나는 코로나라고 해서 딱히 음식을 쟁여둘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내가 사먹는 건 쌀을 제외하면 야채 위주라서 미리 사둘 수도 없는 종류였다. 그런데 내가 사고 싶었던 피클을 파는 코너에 갔는데 선반이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묘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피클인데, 이것까지 쓸어간다고? 아니 이러다가 사재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진짜 한동안 쌀도 못 사는 거 아냐? 미리 사놔야 하나?' 불안감에 쌀 코너를 봤는데, 아뿔싸, 이미 텅텅 비어있었다. 동시에 순간적으로 '정말 상황이 위급한데 나만 신경을 안 쓰고 있는 건가?'라는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경험했다. 이게 모두 '텅 빈 선반'의 힘이었다.

 

 


 

 

다행히도 독일 사회에는 불안에 떨며 사재기를 해서 혼자 집안에 쌓아두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이 힘든 악조건 속에서도 마트에서 주민들을 위해 일을 하는 직원들, 환경미화원 등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캠페인이 펼쳐지고, 각 건물에는 코로나 위험군에 속하는 사람들이나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장을 대신 봐주거나 어려운 일을 대신 해주는 봉사자들도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돕는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자, 앞으로 독일 사회는 아니 이 유럽 전체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까? 이제는 코로나에 대한 걱정을 넘어서 이들의 변화가 궁금하고 기대된다.